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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분양을 하면서 건설업의 생태계에 이해하면서도 ...눈뜬 장님으로 보내온 세월에

  • 작성자 : 박 **
  • 조회수 : 18
  • 작성일 : 2025-05-27
집전화번호 다시 연결 ...어머니가 아버지 무능력에 난감해
부동산 분양을 하면서 건설업의 생태계에 이해하면서도 ...눈뜬 장님으로 보내온 세월에


요새는 그런 생각이 든다. 왜 내가 전화에 연연하는 것일까 그러다 오늘 아침에는 어머니가 너무 나에게 책임전가을 했었다는 생각과 막내고모의 시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면서 결혼을 한 막내고모에게서 돈을 빌리셨다고 한다. 그당시 평택에 아산만 방조제 공사에 하청을 하셨는데 돈을 못받아서 막내고모에게 돈을 돌려주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때 집에 와서 좀 있다가 집을 나가서 한참 후에 연락이 온 곳이 대전이다. 이때 아버지는 집에 있으면서 동화책을 다 읽으신 후에 나보고 읽어보라고 건네주시곤 했다. 그 동화책이 계몽사 50권자리 세계명작동화다.한데 아버지가 일을 안하고 집에 있는 동안에 책 월부값이 밀리자 나머지 25권을 월부책장사가 가져 가 버렸다.그리고 이때 아버지는 afkn으로 넓은 무도장에서 춤추는 남녀들을 보시곤 하고 스포츠 운동경기을 자주 보셨다.

아버지가 유천동에서 결혼식장 건설현장에서 떨어져 다리을 다쳤다고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단다. 그해 좀 지나고 나서 인가 대전에 유천동에 한 여관에서 여름을 나고 서울을 갔다가 다시 내려 왔다. 유천동에 방을 아버지구하시고 우리는 겨울을 보내고 봄 방학이 지나도록 서울을 못가다가 새학기가 시작할 무렵에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가 국민학교 4학년때 여름방학이 다되어서 대전으로 전학을 왔다.

어머니가 대전 태평동에서 김조산소을 개업하자 외할아버지가 전화을 놓아주셧단다. 그런데 얼마지나자 막내고모의 시어머니가 전화을 하셨다. 빌려간 돈을 달라고 말이다. 어머니는 전화도 안받으시면서 나에게 조산소로 걸려오는 전화을 받게 하셨다. 얼마가 되는 돈인지 나는 잘 모른다.그냥 막내고모의 시어머니가 전화을 하셨다. 내가 중학교가 되자 막내고모가 대전에 와서 한동안 있다가 가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보고 밖에 나가서 놀지 말고 전화을 받으면 엄마가 돈을 벌어서 너희들을 돌볼수 있다고 하셨다. 나는 밖에 나가는 것은 중학교때 시험때 공부하기위해서 도서관에 가는 것이 유일했다.

태평도 사거리로 이사오자 어머니는 동생들은 밖에 나가서 노는데 어머니는 자신이 결혼하기전까지 집안일을 할 줄 몰라서 결혼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너는 배워서 나중에 결혼하면 고생안 할 것이라면서 집안일을 시켰다. 난 지금도 그 막내고모의 시어머니에게 미안하다. 어린애가 왜 전화을 받으면서 어쩐 날은 화을 내기도 했다. 사람이 거짓말 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그렇다는 식으로 이야기을 했었다.

아버지는 왜 건설현장에서 하청을 받아서 일을 했다면서 왜 현대건설에 말을 못했을까아산만방조제에 수많은 하청업체가 있었을 터 인데 그들은 돈을 다 받았는가 왜 막내고모와 막내고모 시어머니는 그럼 그 건설회사을 찾아가서 돈을 달라고 햇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내가 중학교을 입학한다고 하자 그 막내고모가 중학교 책가방을 사라고 돈을 부쳤다고 한다.언제 부터인가 그 막내고모 시어머니재가 전화을 안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제발 건설일을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사업을 맡아서 하지만 그건물을 짓고나서 집주인들에게서 돈을 못받아서 우리는 겨울이면 힘든 시간을 보내야 ?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시공사들이다. 건물을 짓는 일을 하는 회사가 시공사인데 가만히 보니 건물 주인들이 돈을 안주니 시공사에서는 유치권 행사을 하는 것이다. 한 10여년전에 대전 유성에서 부동산 분양을 하는데 자꾸만 시공사에서 유치권행사로 분양팀인 시행사의에서 분양을 홍보하는 것을 못하게 건물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해남에서 왔다는 본부장은 유성에 핼스장도 다니며 사람들과 사귀면서 어떻게 시공사을 회유했는지 유치권행사함에도 분양팀이 건물을 분양하게 일을 했고 우리팀의 팀장은 돌아가면서 밖에 나가서 일을 하게 하면서 쉬었다가 일을 하게 했다.한겨울에 유성온천역 지하철 입구 3번출구에서 명동프라자 분양한다고 홍보지을 눈을 맞으며 나누어 주었다.

그러면서 집에 돌아오면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아버지에게서 ..살아오면서 어찌 그러셨냐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신협을 바라보고 큰 남동생에게 ...그리고 남동생과 이혼했다는 백계숙 올캐을 부를까 생각도 하고 중학생인 조카들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그러셨다. 저기가는 사람이 내 남편이라고 하면서 사신다고 ....무엇하나 해결해주는 것이 없으셨단다. 건설업을 한다고 하면서 집주인이나 건물주인들에게서 돈을 못주닌 달러빚을 내기도하지만 그 돈은 그당시 깡이라고 해서 원금에 10을 까고 현금으로 받아서 건설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주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집을 짓는데 드는 건축자재는 외상으로 가져다 집을 지었단다. 그럼에도 건물주들은 제때에 돈을 주지 않아서 우리집에 건설노동자들과 목재소에서 전화가 오고 내가 고등학교을 다녀온 어느 날은 집에 사람들이 잔뜩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다른 집으로 우리을 이사시키고 그곳에서 공부을 하라고 하시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무슨 거래을 했었던 것일까 우연히 유성온천역을 지날 ? 마다 명동프라자을 보는데 지금은 건물에 간판들이 많이 걸려 있다. 부동산 분양을 하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가셧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어머니는 나보고 자리을 지키라고 하셧다. 미안하다고 하시고 아무말 말고 있으라고 ....

그렇다고 부동산 분양을 하면서 느끼는 ....내가 부탄에서 unv께약을 끝내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그때 백화점정소부일을 다니시며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자식들이 박사들이고 유명회사에 다닌다고 이야기을 했었고 그러다 교보생명인가 보험시험을 공부을 하시고 나보고 느닷없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한번 보라고 하셨다.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은 집안살림에 쓰고 어머니 말대로 서울에 여동생 집을 얻어 주었다. 막내 남동생은 누나가 가진 돈이면 대전 법동에 독신자 아파트을 얻을 수잇다고 나가서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을 했는데 어머니는 여동생이 서울에서 어렵게 살고 있으니 집을 얻어주라고 했다. 그때 여동생이 자기 집을 얻어달라고 주말마다 내려왔었다. 그저라 서울 아현동 옥탑방을 얻어주니 주말에 안내려와서 나는 공인중개사 책을 살 돈도 없었다.

왜 나에게 공인중개사 공부을 하라고 하시고 내가 온지 한달이 넘었을때 인가 아버지가 두달간만 건설사무소에서 일해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나는 거절했다. 국제기구로 나갈 생각을 해서 말이다.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나는 경희대 대학원 시험을 쳤었는데 떨어졌었는지 연락을 못받았고 나스스로 위안했다. 이미 국제기구에 후보자로 올라가 있지 않은가 fao와 ifad에 말이다.그떼 koica에도 알렸어야 하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부탄에서 집으로 돌아왔을때 우리집은 이미 무슨 일이 벌어진 이후였다는 생각이다.난 한국에 imf가 터진이후에 부탄은행에서 수표로 전신환을 끊어서 부모님에게 보냈다. 은행으로 돈이 안간다고 했던가 무슨일인지 은행에서 수표을 끊어서 우체국으로 보냈던가어머니 말씀이 내가 보낸 천달러가 28년전에 이백만원인가 하더란다. 그럼 imf 환치기로 돈을 번 사람들도 많지 않을까 전화상으로는 아버지가 몸이 안좋아서 혈압이 있어서 아버지 묘을 샀다고 햇었다.

그리고 부탄에서 있을때 일년이 다되어 갈 무렵에 할머니가 다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전화을 해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왔다갔었다. 그런데 할머니상을 치르고 남동생 부부들과 고스톱을 치는데 얼마 안되는 돈에 목숨걸듯이 있는 힘을 다하는 남동생 커플에 놀랬었다.그리고 그때도 집안 분위기가 달랐었다.

imf가 한국에 오고 부탄생활에 눈물 콧물 다 쏟았다.어미니가 지금 누워 계시더니 피부가 말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가끔씩은 일광욕도 하고 못움직여도 바같출입을 해야 한다. 어머니 피부가 괴사가 올려고 한다. 어제 발을보니...팔에는 무슨 멍같은 것이 있다.여동생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을 애다루듯 하며 어머니가 가려운지 피부을 ?으려고 하면 팔을 탁탁쳤다. 그래도 여동생이 지금 병구완을 해서 무어라고 말을 못하겟다.

여동생 말로는 어머니가 주간보호센타에 다닌다고 하는데 ...나보고서도 일주일후에 오란다. 어머니는 그러셧다. 나와 말로 다투다가도 어머니에게 들리지 않으면 왜 안오냐고 전화로 이야기 하셧다. 모바일 폰이 안되어 전화 어떻게 했냐고 물으니 저쪽에 있다고 만 하신다.

지난 1월에 해지한 전화을 어제 설치했다.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옮길까 싶기도 하다. 어두컴컴한 방에 의식없이 누워있어도 어쩔때는 말씀을 하신다..여동생 눈치을 보는 것도 같다. 어머니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시고 일정한 시간에 자신다. 낮시간에는 티비을 켜두시고 ...나와 살때는 신문도 열심히 보시고 한동안은 우리집에 오셔서 낮에 앉아 있으시면서 티비도 보고 신문도 보셧다.

엄마가 쌍둥이는 아닐 것 같다. 어쩔때는 말을 정정하게 하시니 말이다. 참 안경을 다시 주문했는데 찾지을 못햇다. 면접을 보려간 보험회사에서 갑자기 내일 부터 나와서 보험시험공부을 하라는 것이다.3일 공부하고 시험을 봤는데 불합격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시험을 치면 지점장에게 수당이 떨어져서 재촉을 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인가 우리는 대화가 결여가 되어 이 사회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고 청소년 활동은 안전을 핑계로 등한시 하고 있다. 그것도 아마 인사고과에 공무원들이 보신책이 아닌가 싶다. 허약한 나무는 뿌리가 약하지 않을까 싶다. 난 딸을 바라보며 내딸맞나 애 아빠을 닮았나 우리 아버지을 좀 닮았을까 애 아빠의 엄마을 닮았을까 우리 엄마을 좀 닮았을까 많은 생각이 든다.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때 동네 태권도 도장에서 자신의 뿌리찾기 프로그램으로 본과 종파등 조상에 묻는 것이 있어서 부산에 애아빠에게 전화을 했더니 귀찮아 하고 그 다음에 몇개월 후에는 대장암으로 고생하다가 저 세상에갔다. 그해 여름에 대전에 온다고 해서 딸이 많이 기다렸다.

그때 딸이 아버지을 참 많이 보고 싶어 했는데 남자친구는 첫데이트약속을 하고 자기 부모따라 제주도로 여행을 가고 온다는 아버지는 오지 않아 그 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에는 공부하는 것을 거부햇는데 그것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bs 수학교재가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돈이 생긴다면 초등학교 5학년과 6학년 아이들의 방학에 가족여행을 하도록 저소득층 가족에게 해택을 주고 싶다. 우리는 방학때 세이백화점에서 영화을 봤는데 다른집들은 해외여행도가고 타 관광지로 바캉스도 떠났다.

어제 집전화을 연결했다. 요양보호사나 다른 교육을 받을까 하다가 전화을 그전 전화번호로 연결했다. 그전에도 엄마가 이 전화번호을 착신해서 다녔다.가끔씩 내가 정부기관에 제안하면 집전화로 전화가 오면 엄마가 받아서 나에게 이야기 해 주거나 햇는데 여전히 정부기관에 제안을 하는데 전화가 오는 것이 없었다.

누군가가 전화번호을 이용한 것인지 지난해 11월에 전화을 거니 다른 여자가 전화을 받고 어떤 할아버지가 전화을 받았다. 그리고 올 해 1월에는 여동생이 전화세 가 나온다고 전화을 해지했다.지난해에 가을무렵부터 많이 아팠다. 설사가 계속되고 살도 빠져서 바지가 헐렁해졌었다. 일월에는 죽다가 살아났다. 그리고 누군가가 나을 사칭하고 다닌 것 같다. 다리는 무릎이 아프다....

그전에는 족저근막염 증세가 한 십년전쯤에는 있었다. 발뒷꿈치가 무척 아팠다.그래도 대전시청에 나가서 기자실에 앉아 있었다.

대전시내에 아파트 공사에 많이 진행되었다. 부동산 분양을 했던 문창동에 가니 한 건물이 십층정도 올라갔는데 유치권 행사가 30여개 업체가 하고 있었다.

문창동에서 내가 하던 건물도 유치권 행사가 진행이 되어서 세입자관리을 하는데 자꾸 전화가 와서 그만둘수가 없었다. 계약서을 쓰러 온 사람들도 자신의 딸을 부탁하고 가고 젊은애들이 자꾸 전화을 해서 문제가 있으니 고쳐 달라고 하고 한밤중에도 건물에 화재사이렌이 울린다고 전화오면 나는 이사에게 전화하거나 사장에게 전화을 하곤 햇었다.

부동산 분양 임대 전화상담은 사장이 했었다. 사무실에 전화기가 없었다. kt에서 상담전화을 하는데 한 건물에는 한 통신사만 들어갈 수 있고 그때 그곳에는 sk텔레콤으로 유정숙이라는 건물 주인과 사장은 외국인 같았다. 문창동에는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키스탄. 몽골등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 한다. 모텔들도 많았다. 그래서 네팔의 바탕지역같이 개발되면 좋겟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곳에 사년 다니는 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택관리사 공부도 햇지만 나의 사정봐주다 보니 정작 내아이의 서포트을 제대로 못햇다는 생각에 딸에게 미안하다. 딸이 좀 똑똑하게 나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을 해주었으면 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