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개발사업을 이해하며 제3세계 문화에 경의을 표합니다
미국 평화봉사단 파견이 개발도상국에 파견시작의 순수함이 오래도록 기억되었으면
25.05.01 1404l박향선na4a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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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어렵다보니 평상시에는 관심도 없던 부동산관련 잡애 눈을 돌린다. 현금이 급하다보니 일일7만원준다는 토지분양에도 눈을 돌린다. 이곳도 전일을 다 채우지 못하면 돈을 못받는데 규정에는 몇시간은 얼마 쓰여 있지만 실상에서 이야기하면 하루을 다 채우지 않았으니 못준다고 한다.
한데 이 토지분양으로 사람들이 일일 칠만원을 받아 아주요긴하게 쓴다. 어떤 60대 할머니는 머리을 파마을 다시하고 어떤 분은 예쁜 옷도 사입고 화장도 곱게 하고 토지 분양회사에 나오신다...
오전 조회시간에는 젊은 상무들이나 전무들이 나와서 주식이야기도 하고 팔려고 하는 땅에 대해서 국토개발계획이나 대기업에서 땅을 사서 그 주위에 건물등을 설립한다고 말하면서 그 주위의 주변에 어떤 관공서가 들어서고 어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것이며 그 주위에 어떤 학교가 들어서고 어떤 교육환경이 되는지 아니면 그주위에 어떤 대형마트가 있는지 그 주위에 버스노선이나 지하철역이 있는지 국도는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 주위가 차후에 어떻게 개발될 것인지에 대해서 열심히 마크을 잡고 이야기하며 땅이 얼마이고 오늘은 몇평이 들어와서 얼마에 판다는 공고을 한다.
한 십여년 오년전에는 부동산분양회사에서 전화도 걸고 했었는데 요즘은 공인중개사들이나 경공매을 하는 분등 전문적이 사람들이 있어서 인지 그다지 예전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들어가서는 하루. 이틀만 오피스에 나오다가 잘린단다. 실적이 있어야 하고 팀원들이 몇명이 있어야지 그나마 토지분양회사에서 버틴다고 한다.
\대전에서는 예전에는 대전지역의 은행동 중앙로 둔산동유성등 지역의 부동산 개발계획을 위주로 부동산 분양을 했는데 지금은 주로 토지분양이 쪼개기 분양으로 서산. 새만금에서 시작해서익산을 거쳐서 세종시 공주 천안. 아산지역으로 확대가 되어 용인지역을 포함하더니 이제는 서울에 재개발지역의 부동산분양을 한다고 교차로에 구인광고가 나오고 있다.
과연 대전의 부동산분양을 한다는 광고는 어느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것인가대전 문창동에서 에코토피아 그라시아아트빌을 분양할때 외국신문을 보니 우리나라 아파트 분양 광고가 실려 있었다. 일본 신문에도 우리나라 서울의 아파트 분양 광고가 한국어로 실려 있어서 나도 외국사이트에 내가 부동산 분양 임대을 하던 것을 네이버 부동산을 떠나 외국사이트에 올리려고 햇었다. 네이버 부동산에 분양임대홍보을 하니 서울의 한 부동산에서는 한 호실이 아니라 건물 통째로 얼마냐 고 문의가 오고 나중에는 다른 지방에서 오신 분이 문창동이나 대흥동지역의 부동산을 방문해서 설명을 듣고 내가 근무하는 그라시아 아트빌을 찾아오기도 했다. 사장에서 이야기 하니
전화을 사장이 직접 받겠다고 이야기 했다.나중에는 다른 이사가 전화을 받는다고 하고 문창동일대는 변화가 일고 있었다.
3년후에 가니 가끔씩 가던 식당 옆에 한 10층정도 건물이 들어서고 그 건물에 유치권행사 30여개 업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난헤에 몸이 안좋아서 꼐속 설사을 했는데 11월이 다되어가서 대변이 제대로 나오기 시작했다. 몸 컨디션이 안좋아서 부동산분양을 쉬엄쉬엄 해 볼 생각이었는데 대전 주변을 KCC에테르 스위첸을 홍보하면서 돌아다니다가 깜짝 놀랬다.
이렇게 도시가 개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1996년 봄에 서울에서 한구자유총연맹에서 하는 남북통일대배교육을 듣는데 평양시내에는 커다란 빌딩들이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어서 놀랬다. 한데 그곳에 사람들이 다 사는 것이 아니라 데모스트레이션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북한도 큰 빌딩을 짓는다는 것에 깜짝 놀랬었다.
그리고 외국에서 돌아와서 서울에서 지역지 기자을 하면서 서울의 건물을 돌아다니다 보면 과거와 달리 빈 층이 보이기 시작했었다. 신도시는 개발이 되고 인터넷 발달과 더불어 무역회사등도 지방에서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었다..
대전에도 원도심에 건물이 비어가고 유성도안이 개발이 되기도 전에 세종시가 개발이 되면서 대전목동에서 부동산 공인중개사을 하는 사람에 의하면 부동산정책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대전이 배후도시가 된다고 이야기을 했다. 그때는 유성이 아직 다 개발이 되기도 전이다.이런식의 도시개발은 공인중개사들도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무실을 두고 신개발지에 가서 공인중개사 사무소을 해야 하고 분양권등을 팔고 다시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산도 그 자리에서만 하면 아이들교욱이 힘들어서 자신은 남편이 목동아파트의 공인중개사사무실을 지키고 자신은 분양사무소에 나와서 일거리을 찾는다는 것이다.
세종시에서는 새로지어진 빌딩에 상가가 분양이 안되자 일년치 세을 안내고 무료로 임대조건과 인테리어비을 대주는 등 다양한 조건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래도 세종시의 기반산업이 제대로 조성이 안되어서 상가 분양이 어렵다고 했다.
대전의 원도심인 은행동과 중앙시장을 지나 인동이나 원동 대흥동등에 중소형빌딩이나 아파트가 들어서는데 한가지 안타까운것은 대전의 역사성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오래된 건물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산하에 유지보수관리 정부관청이 있었는데 한 4년전에 사라?다. 그당시에 언룐 및 정부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정부기관의 상당수가 오래 되어 유지 보수을 해야하는 형편이라고 햇따. 그래서 유럽등의 건물유지보수관리 업체을 검색해보곤 했다.
대전 문창동에서 대흥동 오토바이거리을 거쳐서 은행동 가는 길을 보면 상당히 오래된 건물들이 있는데 건물의 안전성이나 역사성 보존가치을 이야기 한 연후에 도심지 개발이 이루어져야하지 않나싶다. 우리는 무조건 건물을 부수고 있다. 그라시아 아트빌에서 그 집 앞에 목조건물이 해체되는 것을 지켜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목수셨다. 나에게 직접 나무을 다루는 것을 별로 보여 주지는 않았지만 어려서 국민학교의 과제인 책꽂이을 만들어 주시고 했다. 그리고 집에 마루을 놓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박목수라 부르기보다는 십장이나 박감독. 박사장이라고 불렀다.
15년전에 중앙로에 한 건물의 부동산분양을 하면서 그 주위에 대신증권에 가서도 홍보지을 전달하니 한 분이 그러셨다. 공법이 뭐요 사무실에서 물으니 시멘트빔공법인가 뭐라고 하셨다. 증권하시는 노인분들에게 설명을 하려면 많이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부동산분양을 할때 어떤 공법으로 어떤 건축자재을 사용하게 되는지 물으면 부동산회사에서 일을 할 수가 없다. 홍보만 하라는 것이다. 주식을 하는 사람은 주식만 한다고 한다. 주식은 분석을 통해서 하다보니 그 분들에게 부동산 빌딩 분양을 설명할려면 철근은 어떤 나라의 원산지것을 사용하고 어떤 건축자재을 쓸 것이지 설명을 해줘야 한다. 어르신들은 까도롭다.
전화로 부동산분양을 이야기 하면 주로 평당 얼마냐 분양가가 얼마냐 위치가 어?게 되느냐 간단한 것만 묻는다. 그리고 관심이 있으면 모델하우스에 방문하거나 나중에 지나가다가 들리기도 한다.
문창동에 사무실에 있으면서 주택관리사을 독학? 집에서 매일 한시간씩 무크로 들으면서 하고 집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을 보니 전기코드부터 기존의 전자제품을 놓은 위치까지 갖자기을 물어온다. 작은 도심형주택건물이라 아니면 초자 건축가가 설계을 해서 인지 좀 엉성하기는 했는데 방문객을 맞이 하면서 아 건축가가 여성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리고 살림을 해보았거나 하는 삶의 지혜가 담긴 집을 내가 짓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인터넷으로 서울의 평창동의 잘사는 집과 한남동의 외국인들이 사는 가옥들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아 대전에 이런 주택단지을 세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생겼다.
세종시가 행정도시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서울의 외교단지가 대전이나 세종시로 내려오지 않을까ㅣ각 국제 기구와 엔지오도 함께 말이다.그러나 대전시나 세종시는 준비가 안되어가는데 6년전에 청주을 가니 청주에는 국제공항이 있어서도 이겟지만 청주시내버스에 한자와 영자가 표기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문창동에 에코토피아에 있으면서 그쪽에 모텔촌도 많고 한밭운동장과 보문산도 있고 해서 이곳에 외국인의 거리을 조성하자고 대전시에 제안했다. 그러면 굳이 커다란 빌딩을 짓지 않고서도 리모델링과 이층에 식당과 각 나라 문화소개 토산품가게가 생기면 이색적인 거리가 되고 이들이 각나라의 언어을 가르치는 어학원이나 교습소을 내면 국제거리로 발돋움하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오토바이 박물관을 세워 부모아 이이들이 이곳을 방문해 라이센스교육과 더불어 오토바이 해체와 다시 조립해보는 놀이 시설도 갖추고 오토바이 시승도 하고 교육도 이루어지면 좋지 않을까 대전시청에 제안했다. 일본에는 아이들이 자동차부품을 조립하는 곳이 생기었다.
대전시의 건물을 부수고 다시 멋진 건물을 짓는 것도 좋지만 대전 특화거리에 맞게 지역향토산업을 육성하면서 it 산업도 함께 발맞추어간다면 ....나이든 노인들이 힘이 있다면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함께 머리을 맞대었으면 한다.
이지역은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키스탄. 몽골등의 외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고는 하는데 낮에? 있어서 잘 모른다.그러나 오래간만에 가본 거리는 상당히 황폐화가 되어 있었다.
이아이디어을 대전중구청에 올리려 했는데 안되어서 대전시청에 올리었다. 대전의 향토 산업이 빛을 잃어가는 것은 대전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이다. 그것이 좋든 싫든 우리는 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대전시청에서도 브리핑에 특화산업에 대해서 여쭈어 보았는데 시장님계서 답변이 준비가 안되었는지 그냥 패스하셧다.
한국부동산원에 원도심이 공동화된다고 이야기 하기전에 부동산 권리금에 대해서 한번 세미나가 열리는 것은 어떨지 싶다. 외국에서는 이 부동산 권리금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전화번호에도 프리미엄이 붙어서 좋은 번호나 오래돈 상업용전화번호는 비싸다고 하셨다. 우리어머니가 내가 동아원색백과사전을 달라고 하니 우리집 장손을 줄것이라고 했었다. 그러다가 이집을 나가면서 동네에 빌라에 집을 얻으시면서 나보고 전화번호을 명의 이전을 하라고 하셨다. 어머니가 살아계셔서 명이이전을 못하고 있었는데 지난해에 내가 아프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어머니 전화비을 안냈다고 올 초에 해지을 했다.내가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엄마것을 쓸려고 하는데 황당해서 다시 할려고 하다가 잠자코 기다리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도 부탄에서도 이 전화번호로 전화을 했다.전화국에 이야기 했다. 내가 다시 하겟따고 한데 조심스럽다. 어머니가 이야기 하던 것과 버드네 아 파트에 딸이 영어 선생을 한다는 할아버지 이야기며 극동상가에서 본 뒷모습으로는 한 180은 안되는데 175쯤될까 미군부대에서 일을 하다가 정년퇴직을 햇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날은 미안하다고 했다.
대전인터네신문을 그만두겠다고 하니 명예직이니 계속하라고 이야기 하고 말이다. 딸을 학원을 보내고 남들처럼 입히고 가르칠려면 돈이 필요한데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말슴을 잘 안하신다. 대전시민대학에 갔다가 사위가 개척교회을 한다는 할머니을 만나서 식사도 하더니 나중에는 일요일 마다 교회을 가고 ...그리고 나는 문창동 에코토피아 부동산분양사무실을 나가게 되었다.
죄근에 보니 교회에서도 복지 단체을 만들어서 건축자재관련 일을 하고 요양보호사 사업도 하고
갖가지 사업을 한다.
문제는 건설사업이 일어나면서 각나라마다 터부시 되는 민간신앙에 따른 사라들에게 피해가 없었으면 한다. 부탄에서는 건물을 지을때 여자가 들어가면 안된다고 한다. 여자는 부정을 탄다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건물을 다짓고 돼지머리을 올리고 과일과 전등을 올리고 제사을 지낸다.
지금은 건물을 짓는데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그곳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각 나라별로 어떠한 제사나 굿등을 하는지 최소한은 알아야지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간다. 우리나라는 배을띄울때 접신을 햇다고 한다.그렇다면 화교나 몽골. 우즈배키스탄 카자키스탄. 방그라데시. 태국 베트남.필리핀등....우리는 그냥 외국인근로자들의 임금이 싸다고 그들을 고용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가 연구가 되어진 상태에서 그들을 받아들여야한다.
성경에는 하느님에게 자신의 아들을 바치고 산 제물을 받치지 않느냐 말이다. 단지 바이블이겟지만 말이다. 새도로가 나면 처녀가 지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을 얼핏 들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외국인 근로자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에서 정부에 요청헤서 쿼터로 한국에 오게 된다. 부디 한국해외봉사단들에게 제 3세계언어을 가르쳐서 글씨 뿐만아니라 말도 함께 배울수 있도록 선처을 배풀어야 한다.
그사회의 지도자들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에 캐네디 대통령은 그 나라의 민초들과 삶을 같이 하라고 평화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제3세계가 부패가 많이 되어 미국의 원조금이 제3세꼐에 제대로 전달이 안되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한국대사관에서 방글라데시 정부에 10대 앰블란스을 희사했는데 정작 도착한 것은 통키병원에 앰플랜스 한대 였다고 한다.그리고 한국청년 해외봉사단이 파견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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